블로그 이미지
바닷속
99%의 미래를 위해서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내 글/에세이랄까?'에 해당되는 글 3

  1. 2013.08.19 한국식 유교성향 때문에 애들이 자살한다.
  2. 2012.11.17 다단계판매에 대하여
  3. 2012.11.17 한국엔 유아적 어른이 많다.
2013.08.19 01:38 내 글/에세이랄까?


다음의 글은 

한국인의 자살율의 원인을 찾다가 생각하게 된  

한국적 유교사상의 경향을 다룬 글인데 5년전쯤 써놓은 글입니다.





  한국의 정신문화는, 기마민족으로서의 고구려의 활달함과 여성까지도 존중되었던 삼국시대의 양성평등적인 문화, 그리고 무역이 활발했던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역동적인 성질을 가졌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건국이념인 유교정신에 의해 정신문화의 흐름을 형식주의적인 면이 더 많은 윤리의식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유가사상의 일반적인 성향을 훓어보면 다음과 같다.  

 

고대 중국대륙의 여러 중소국가들이 치고받는 어지러운 정국이 계속 되었을 즈음, 여러 사상가들이 나타나 동양철학의 뿌리를 다지고 있었다 한다  때에도 노장사상이 공맹사상보 더 일찍 존재해 있었지만,공자의 생각이 난국을 통치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간파되었기에 왕이 유가사상을 비호하게 된다.   국가통치에 전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유교사상은   오랜 기간 동안 중국 통치자들에게 통치에 합당한 사상으로 환영받게 된 것은, 다른 사상들보다 공맹사상은 ..질서와 .... 강조한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유가사상의 계보변화를 보면, 주자학계통의 <이론을 중시하는 > 양명학계통의 <실질을 따르는>으로 갈라짐을   있는데, 후대에 속하는 중국의 .청대에 이르러서는 양명학이나 실학쪽이 주자학계통보다  발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라에서 ()나라까지의 유학은, 단지 오경(五經) 대한 해석에 그치고 철학적인 깊이가 없었기 때문에 소위 당시의 지식인들은 노장(老莊)이나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유학을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경향에 대응하기 위해 원(), (), () 600년에 걸쳐 유가사상이 관학(官學)으로 자리하게  것이다.   (주자은 중국 송대(宋代)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유학으로 주돈이, 정호, 정이 등에게서비롯되어 주희(朱熹) 집대성하였기 때문에 불리우게  성리학의 또다른 줄기의 이름인 셈이다.)   전반적인 성리학의 내용을 보면 인간성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기 위한 성즉리(性卽理) 이기성(理氣性)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성즉리(性卽理) 대우주에는 완전히 조화된 () 흐르고 있고, 그것은 인간의()에도 깃들어 있고, 이성(理性)  그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이기성(理氣性) 만물을 구성하는요소로서 ()외에 (:물질적요소) 있다는 일종의 이분적인 인식론으로 부터 출발한다.   인식론적분석방법 때문에 이 유가사상을 성리학이라 불리워지는 것이다.

 

한반도에 성리학이 도입된 것은 고려 말이었지만 16세기에 들어와서야 성리학자들에 의하여 이론적탐구가 본격화되었다.   우리도 익히 들어 아는 이황(李滉), 이이(李珥) 대표적 학자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성리학 연구의 특징으로는 정주학 절대우위, 주지주의적 경향, () 절대시의 풍토, 명분론적 사고 팽배, 주리론(主理論) 보수성이 있는 주자학적 경향이라고 말해진다.  

주자학(朱子學) 문제점을 간파하고 좀더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사고하자 것이 중국 명나라의 양명왕수인(王守仁) 세운 양명학이다.    주자학에서는 성즉리(性卽理)라고 하는  반해서 양명학 (陽明學) 심즉리(心卽理) 한다.   심즉리로부터 출발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 도달하고 마지막으로 치양지(致良知) 완성된다는 것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천리 (天理)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마음에 있으며, 사람마다 양지(良知;선악을 깨닫는 마음) 타고났으므로 따로 학문할 필요없이  양지를 완전하게 발휘하면 된다 입장이다.   양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안으로 침잠(沈潛)하지만 말고 생활실천을 매개로 해야 하므로, 여기서 지행합일(행하는 것이 아는 ) 주장이 나온다.   결국 왕수인의 사후에 이지(李贄) 등은 인간욕망을 완전히 긍정하기에 이르게 되면 이는 후에 실학으로 발전되어진다.

 

중국의 문화혁명 때에는, 종적(縱的) 권력관계의 기반이던 유교사상은 타파시킬 대상이 되었었다.   당시 중국본토에 불어 닥친 사회주의 혁명은,  아래를 중시하는 유교와는 정반대의 개념인 '옆으로' 사회혁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문화혁명 당시에는, 공자의 생각을 완전 없애려고 공자의 묘까지 혁명군이 손을 대었기도 했다.   현재의 중국은 공자의 사상을 중요한 중국사상가로서 새롭게 인정하고 공자의 고향을 관광지로서 부각시키는 정도의 국가중심주의적 안목을 가지게 되었지만, 혁명 당시의 유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중국사회 전반에 적어도 세대간/이성간의 차이를 좁혀주는데 기여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학자셨던 퇴계선생이 굳이 주관적 힘을 중시하던 당대 중국의 양명학을 멀리하고 굳이 주자학  형식이나 틀을 중시하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두고 16세기 조선시대 어지러운정치상황이라는 특수한 사회여건 때문이었다고 후대 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퇴계선생에 따르면 양명학적 사고방식으로는 인간의 주관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恣意 공적 진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왜곡된 현실을 정당화하는 기능까지 수행하게 된다고 보았다.  16세기 당시 임금의 폭정과 훈구 척신세력들의부정부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주관적 해석 역점을  양명학보다 객관적 해석 주력한 주자학을 따라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퇴계이후의 학자인 하곡 정제두(1649~1736) 의해서도 지지되었다.    하곡선생도 주관성을 강조하고 있던 양명학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양명학을 주창한) 왕수인의 학설 속에서 인간이  욕망에 제멋대로 자신을 맡겨버림으로써 반사회적 행태를 조장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퇴계선생이 양명학을 멀리하게  이유로, 당시 문정왕후의 불교우대정책에 대한 비판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양명학은  이론적 맥락을 선불교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기에, 만약<문정왕후의 불교우대정책> 반대하려면  양명학도 동시에 비판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부언하자면, 주관성의 중시란 철학이나 불교와 같은 맥락이었으며 이것이 양명학과도 맥을 함께했던 것이다.   이처럼 당시 퇴계선생이 중국에서 유행하던 양명학을 비판하고 오히려 300년이나 이전 시대의 송나라 주희(회암, 1130~1200) 이론을 자신의 사상준거로 삼았던 것은, 단지 16세기 조선의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맞물린 사고방식 때문이었다고 설명될  있다.

 

결과적으로, 조선 당대의 학자들의 선택은 한국사상사에서 철학의 중요성이나 현실주의적 안목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양명학의 입장인 철학계보가 간과된 것은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내용보다외형적 틀을 중시한 윤리의식  윤리가 피상적으로 중시된다는 문제점을 대중화시키게  것이다 마음가짐을 경시하여 내면화된 윤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눈이 없는 경우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피동적 윤리의식 팽배하게  것이다 현대에서도 한국인들은 어떤 일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피동의 심리가 발달해있고 군집적인 집단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는 점과도 연결되어 생각할 수 있다 즉 타인들의 눈이 없을 떄는 편법도 많이 나타나게 되고 또한 형식을 내용보다 중시하는 인식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 주자학적 성향은 수백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사상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현대에도 현실주의적이고 주관성을 중시한 심철학이 부재한 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뒷거래, 일상에서의 주관적 윤리의식의 부재’, 지나친 형식주의적 겉보기 예의 중시 같은 경향이 나타난 원인인 것이다.   피동적 가치인 타인이  어떻게 볼까? 라는 질문에 상당히 신경쓰면서 살게 된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스트레스 속에서 지낼 확률이 높은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거나 공부를 기대수준 만큼 못할 때도 무심코 부모들은 '창피하다' 말을 내뱉는다.    잘못이 있었다면 '' 그렇게 되었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할 일이지, 아이의 무의식속에 타인의   '피동적인 가치' 언급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어떻게 볼까' 염려하는시각들을 키우는 것은 아이에게 콤플렉스의 인식을 넣어주고 피동적 사고방식을 생활화하게 한다  집안의 아이가 기대에 못미치는 대학을 들어가게 되면  집안의 망신이 되고,   아이가 명예와 돈을 얻을 같은 직업군에 들면  가족이 고개를 세우게 되는 가족심리를 갖게 되는 것은 스트레스를 양산하는 구조다.     비교해서 느끼는 윤리의식이 일반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존심과 열등감을 야누스적으로동시에 갖게 한다 이토록 타인/사회에 의해 부여된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는, 아이 자신의  주관적 힘을약하게 만들어 남들이 하는 것을 못하는 자신이 되어 젊은이들이 자살을 결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성리학적인 피동적 윤리의식이 대중화된 한국사회에는 다름과 같은 폐해를 남겼다. 

첫째, 남에게 의해 보여지는 결과물이나 성과물에 집착하기 쉽게 한다 따라서 목적을 위해서 어떤수단도 합리화되기 쉽다.  결과에 집착하면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사고방식을 갖게 되므로 과정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에 비리나 청탁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피동적 윤리의식은 <결과중심주의자>를 양산하고 과정도 중시되는 사회윤리를 경시하게 만든다.

 

둘째, 겉핧기식 제식의 엄격성 남기고 내용의 부실을 가져왔다.    문제는 굳이 부언할 필요없이 구세대들의 일반적 인식성향에서 볼 수 있다 가령 결혼식을 해도 에는 어떤 품목을 넣어야 하고,젯상의 음식의 위치까지 조목별로 구체적인 식이 있었다는 것은 명목가치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풍토인 것이다.  전통지키기는 문화계승차원에서 중요하더라도 명목이 실질보다 우선시된 문화 겉치레 문화를낳게 되었으므로 젊은 세대에 의한 합리적 변화를 갖는 것을 당연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겉치레 중시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나도 겉보기만큼은 비슷하게 해야 한다 강박관념과 집단성향과 그렇지 못할 경우, 콤플렉스성 스트레스를 양산한다.

 

셋째, 소속된 집단윤리를 따르려는 집단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교윤리는  국가라는 단위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인식의 틀을 미리 정했다.   개인들은 주어진 자리에 맞는 행동윤리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경향이 강하다.   이 문화적 보수성은, 현대에도 구세대일수록 사회순응적이고 집단적인 사고방식을 하게 하는데, 친목계, 동창, 동호회 등 또 교회모임까지도 많은 부분에서  공동체사회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상당히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사람간의 파티와 서구사회의 파티와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서구사람간의 파티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웃고 떠드는 파티가 대부분의 모습이다.  또 이들은 헤어지는 것에도 아쉬움이 없다.   하지만 한국식 파티는 확실히 누가 누구의 윗자리인지 또는누구와 친한지 자리지움이 존재한다 위계가 없는 경우에는 아는 사람끼리만 파티를 즐기다가 헤어진다.   그만큼 개인성향보다 집단성향인 소속감과 위계가 중요한 것이다.

 

넷째, 개인들의 주관성보다 집단의 우리의식(we-feeling)으로 자신을 무장하려는 태도를 지닌다 개인이 소속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쉽게 동조하면서 안도하고  동조가 지나쳐서 대외적 배타성을갖게 된다  <집단의 닫힌 결집력>은 개인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했을 때보다 훨씬 가중된 집단에너지를 낳게 된다.  종교단체의  배타성이나 정치적으로 결속된 집단에서 이런 맹목성이 나타나는데, 특히 타 집단에 대한 대응이 감정적으로 나타난다.   

 

다섯째, 끼리의 동조나 뭉침은 상위개념인 더 큰 사회라는 전체적 시각을 망각하게 하기 쉽다.  한국사회의 최대의 담론인 .호남간의 지역주의적사고나, 보수냐 진보냐 또는 우파냐 좌파냐, 또는 극일이냐 친일이냐 라는 싸움이 일었을 경우, 더 큰 국가적 대명제를 잊기 쉽다 즉 끼리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갈등이 있다면 더 큰 사회 전반을 을 위한 시각을 중심으로 이성적 의견교환이 있어야 건설적이다.   오히려 지역이기를 부축이거나 집단이기를 부축이는 시도는 한국호의 미래를 망치는 망국적인 일이다

 

여섯째, 마이너리티가 되었을 때의 심리는 다른 사람들의  때문에 죽고 싶어지는 심리가 생긴다.   한국사회의 다수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므로 대세에 속하기를 원한다.   이때 소수자들은 집단속에 들어가 있는 안도감을 누릴 수 없으므로 소수그룹이라는 것 자체를 스트레스로 여긴다 대학에못갔대 이혼을 했대 실직을 했대 같은 개인적인 사건들이 주위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스트레스를 주는 사회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의 마이너리티들은 주위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게 된다 또한 개별성이나 주관성이 약하므로 자신이 소속할 집단이 없어진다면, 정신적인 낭패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집단내부의 결속이 강할수록,  속에 끼지 못한 자들은 스트레스가 강하게 남는다.

  

끝으로 심철학의 부재로 개인의 주관성을 존중하는 사회상식을 키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행히 현대에 올수록 우리사회에도 신세대의 사고방식 속에 주관적 또는 개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풍조가 중요하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추언) 조선시대가 5백년을 지속하는데는 유교적 사회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 점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기의 혼란이 동학으로 나타난 이유는 '개혁적 시각을 제도적으로 흡수하는데 실패한 왕조이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대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사회전반에 퍼진 '형식주의적 피동적 인식'은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로 만들고 있지요.  이 점에서 한국식유교를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다른 문제로 북한체제를 이해하는 데는 '유교식 사회주의체제'라는 시각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젠가는 남북이 같이 풀어야 할 숙제이므로 유교에 대한 연구분석은 필요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닷속
2012.11.17 05:33 내 글/에세이랄까?

다단계판매제도는 미국의 자유경제체제에서 어떤 유통구조이든 상관없다는 식에서 나타난 방법이랍니다.

이 유통구조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캐나다에서는 법으로 규제하고 있었는데 최근에야 규제를 풀었습니다. 



다단계판매가미국이 가까운 관계로 암암리에 우리나라 교포와 중국인 사회에서 유통되고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유를 보니까, 보통 이 다단계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잘 먹혀들어갈 유통행위이므로아시아상권에서잘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부분은대궁님의 질문에 은시님이 답한 부분에서도 나타났지만... )

다단계 판매는 유통구조망을 축소해서 그 이익분을 소비자와 생산자가 나눈다는겉으로는 괜찮아보이는 상행동임에도.. 우리사회에서는 이것이 180도로 변형되어서 사기행위로 발전하기 쉽고...무슨 할당액이 있으면 자신의 포인트가 높아진다나 해서 자신의 쌈지돈 뿐아니라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목돈까지 이용해서 하나의 급조된 돈벌이구조가 되었더군요.

쉽게 벌려는데 다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정상적인 상도덕이 없기에 또 음성적인 세금포탈문제도 있기에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얘기로.. 

월마트같은 유통구조를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프랑스인들이 적극 반대한 이유로 이런 상권이 형성되면 기존의 지역사회에 있던 작은 소규모상인들의 피해가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지역사회 중소상인들이 이 미국식 발상을 반대하고 이런 상권이 들어오는 것을 적극반대했지요. 같은 일이 이 캐나다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가령 월마트가 어느 지역에 들어서려고 하면 지역상권에서 반대하게 되고 이것이 강력한 경우 월마트는 들어오지 못하게 되지요. 

때문에 월마트의 마케팅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기금마련같은 것에 많이 신경을 쓰고있고.. 실업자를 구제하고 지역경제를 일시에 살린다는 식으로 접근하여 결국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적발상은 자유경쟁이라는 것에경제행동을 허락하지만..많은 다른나라에서는 이런 경제행위가 줄지역사회나소규모상인들에게 피해를 주기에 이를 규제대상으로 하고 있지요. 일반사람들도 이런 기사에 민감하고 또 상당히 사회적 행동을 하고 있기에 미국적 대규모 자유경쟁을 반대하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미국사회에서 나온 것이 주는 결과에 더 나쁜 현상까지 첨가되어악화되고 있지않나 생각해 봅니다. 때문에 우리사회에서의 사회적 규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닷속
2012.11.17 05:26 내 글/에세이랄까?

한국사회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자기조절력이 약한 편이다. 

휩쓸려서 또는 자기도 모르게..어른들은 도박에 중독되고 아이들은 게임에 중독된다. 

이곳 캐나다사회에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각 자치구에서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카지노 등의 설치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곳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돈을 잃어도 적당히 잃고이성적으로 자기조절을 하는 반면에한국사람들은 유독패가망신하는 짓을 자주 한다고 한다.   


어른이라도 우리나라 어른들은 자기조절력이 약한 것이 사실인 것같다,

그런데 어른 뿐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곳 한국학생들은 유독 인터넷 게임이나 기타의 이유로 자신의 공부페이스를 자주 잃는다. 그 결과.. 집에서 게임으로 밤을 새우고 학교에서는 조는 유학생들이 많다고 한다.주위에서 보는아이들 가운데도 이런 자취생이나 홈스테이 학생들이 있다. 


즉 자신을 조절할 능력을 키우지 못하였기에 이런 일들이 생긴다. 

우리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존중하고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일을 계획하고 살도록 하는 훈련이 적은편이다. 대개는 어른들이 하라는대로 하고 또 어른들이 시중들고 하면서 정신을 무방비하게 살다가, 이곳에고교생으로 혼자 지내게 되면 우선 정신력에서 뒤지는 것같다. 이렇게 큰 아이들이 다시 어른이 되는 사회는 또한 마찬가지의 일이 생기기 쉽다. 어디에 빠지는 것까지는 좋은데 헤어나오기 상당히 어려운 유아적 어른이 많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닷속
prev 1 next